A1. 소아물리치료 이야기/A101.재활디딤돌(뇌병변) 19

[재활디딤돌] "놀자~" #20

"놀자~~"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주로 밖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오랜만에 집 안에서 진행하게 되었어요. 아이의 방에는 정말 많은 장난감이 가득가득합니다. 매번 그랬듯, 제가 들어가면 숨었다가 나오면서 나를 놀래키고 손 씻고 나오는 저를 붙잡고 하는 첫마디는 "놀자~"예요. 벌써부터 무슨 장난감으로 무얼 하고 놀지 다 정해놨죠. 오늘도 역시 요괴 메카드입니다. 요괴 메카드 통에서 하나하나 꺼내며 정성스레 설명해줍니다. 잠시 보고 있다가 아이에게 이야기합니다. "놀긴 놀겠지만 할 건 하고 놀아야지??" 아이의 입은 삐죽~ 안 하면 안 되냐고 물어봅니다. "안 할 순 없지~ 네가 하고 싶은 놀이를 하려면 선생님이 하고 싶은 운동도 해야 해. 아주 힘든 운동을 조금만 할래? 아니면 약간 힘든 운동을 많이 할..

[재활디딤돌] "든든하네요!" #19

지난해 말 정도였을까요? ICF 평가를 하고 본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던 아이가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을 맞아 입원을 했어요. 길어지는 중환자실 생활이 꽤 힘드셨던 어머님과의 통화는 주로 밝은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지만 중간중간 흘리시는 눈물을 느낄 수 있었지요. 목줄과 뱃줄을 뚫고, 이런저런 기계와 함께 퇴원한 아이! 면역이 떨어져 확산하는 오미크론을 살짝 피해 드디어 다시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와 어머님! 역시나 밝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그동안의 과정을 나누고, 앞으로의 계획과 방향, 다짐을 함께 이야기했어요. 아이에게 최대한 맞추어 진행하겠노라고 했어요. 몇 달 전엔 연하 치료가 가장 필요해서 작업 선생님을 파견하기로 했으나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고, 반면에 원래 다니던 치료실에 ..

[재활디딤돌] "올 한 해도 잘 부탁 드려요!" #17

어느 덧 2021년이 가고 새로운 새해가 시작된 지 한달이 넘었습니다. 한달간 휴식기에 들어갔던 재활디딤돌 사업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달동안 사업을 점검하고, 다듬어 계획하는 과정에서 걱정 반, 떨림 반이었지요. 2022년 첫 방문한 디딤이네 집. 디딤이는 여전히 귀엽고, 말똥말똥 저를 쳐다보며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습니다. 평가도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끝나고 어머님과 의레 나눌 수 있는 그런 흔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올 한 해도 잘 부탁 드려요!" "선생님, 저야말로 잘 부탁 드려요." 잘 부탁 드린다는 말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오갔습니다. 으레 할 수 있는 그런 말임에도 그간 쌓였던 관계 덕분인지, 무언가 더 따뜻하고 훈훈했던 느낌은 옆에서 윙윙 돌고 있던 전기 ..

[재활디딤돌] "워커 빌려드릴까요?" #16

문득 아이 뒤에 앉아 평소처럼 허리를 펴도록 도와주는 데 집중하던 중 아이가 이제 막 힘들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많이 울던 아이였는데, 허리를 펴도록 뒤에서 잡아주면 사정없이 더 허리를 말고, 골반을 뒤로 밀어버리는 아이였거든요. 그런데 골반을 세워주면 세워주는 대로 편안하게 몇 초 이상 유지하고, 무엇보다 골반을 세우는 데(기울이는데) 거부감이 없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게 가능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머님! 문득 보니, 아이가 허리를 참 잘 펴네요." "제가 가만 안놔두거든요 ㅋㅋ" 그렇습니다. 아 아이의 어머님은 참 긍정적인 분이시고, 아이를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평소에 앉아서 노는 시간이 대부분인 아이의 허리를 세워주는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하십니다. 물..

[재활디딤돌] "우리 어떻게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갈 수 있었을까?" #15

"오늘도 밖에서 하자고 하던가요?" 매번 월요일이 되면 어머님께 여쭤봅니다. 오늘은 어디서 하고 싶은지, 기분이 어떤지 말이지요. 오늘도 역시 밖에서 하고 싶다고 들었는데, 막상 만나니 아이의 얼굴이 어둡습니다. 뭔가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랄까요. "오늘은 안에서 할까? 밖에 나가지 말까?" 물어보니 고개를 저으며 나갈 거라고 합니다. 엄마와 인사하고, 아이와 길을 나섭니다. 보통은 재잘재잘 수다쟁이 아이가 오늘은 발을 떼자마자 손을 벌리며 이야기합니다. "안아줘~ 업어줘~" "미안~ 선생님은 널 업어줄 수 없어. 우리 조금만 힘내서 걸어볼까? 많이 피곤하구나?" "힝~" 오늘따라 칭얼거림이 있는 아이를 보며 생각에 잠겨봅니다. '왜 이렇게 피곤한데, 밖에서 하자고 했을까?' 그래도 이런 저런 수다로 유도..

[재활디딤돌] "내 맘대로 안되는 걸 어떻게 해!" #14

"쟤 왜 저러냐?" 라고 물어본 질문에 아이는 고개를 절레(한번) 흔들며 말했습니다. "그러게요..." 정신없이 뛰고 바닥에서 수영을 하는 동생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득. 아이와 굉장히 원활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인지/언어가 많이 좋아졌고, 나와 만난 지 2년째라 많이 익숙해진 부분이 있긴 하나 그래도 종종 잘 알아듣지 못해 되묻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되묻기는 커녕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왔다 갔다 하는 대화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어머님께 여쭤보니 굉장히 급격하게 발달하고 있다고 하시네요. "아이고 선생님. 이제 못하는 말이 없어요~"라고 하시면서요. 하루는 힘을 막 주길래, 힘을 좀 빼라고 했더니 아이가 그러더랍니다. "내 맘..

[재활디딤돌] "아이에게 기분 좋은 아침을 선사해주는 것은 어떨까요?" #13

할머님이 주 양육자인 이 아이는 신체/심리적으로 많은 불안도를 가지고 있던 아이였습니다. 최근 다양한 사건들로 인해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을 아주 잘 이겨낸 아이는 개인적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잠재력이 많아 보이는 아이이고, 꽤 어린 축에 속하는 아이여서 잘만 도와준다면 더 잘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하지만 여전히 높은 긴장도를 가진 아이에게 가장 큰 고민 역시 긴장도입니다. 긴장도를 낮춘다는 것은 참 어렵죠. 흔히 뇌성마비 아동들을 키우는 보호자들께서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강직을 없앨 수 있다'입니다. ​ 이런 착각을 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용어의 혼동입니다. 아이가 장애와 함께 성장하면서 (갑작스럽던 아니던..

[재활디딤돌] 어머님과 아이도 싹을 틔우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아닐까요? #12

정말 더운 여름입니다. 앞쪽으로는 북한산이, 뒤쪽으로는 중랑천이 흐르는 아파트 6층 아이의 집은 맞바람이 아주 많이 불어 치네요. 그럼에도 정말 더운 여름, 이 날씨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더워요. 방문하는 저를 위해 에어컨을 종종 켜주시긴 하지만, 저는 그냥 일상처럼 해달라고 부탁드립니다. 특별한 대우를 해주시는 것도 불편하지만, 아이와 가정의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기도 합니다. ​ 가뜩이나 더위에 약한 아이는 몸 곳곳에 땀띠가 났습니다. 그래도 재작년보다는 작년이, 작년보다는 올해가 더 낫다고 하시며 웃으십니다. 매일매일 아이와 붙어 씨름 아닌 씨름을 하다 보면 아이가 커가는 걸 느낄 수 없는데 이렇게 작년과 다른 모습을 볼 때 아이가 컸다고 느낀다고 하셨습니다. ​ 아이는 자랍니..

[재활디딤돌] "나 손 놓고 갈래!" #11

"오늘 3번밖에 안 넘어졌어요. 정말 대단하죠? 오늘은 손도 잡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 답답한 집 안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아이와 함께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 지 벌써 4주 차입니다. 놀이터에도 가고, 동네 산책도 하며 이런저런 추억이 쌓이고 있어요. 그냥 별 과제나 계획된 활동이 없이도 그때, 그 순간의 아이의 마음에 맞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 사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입장에서 항상 무언가를 준비하죠. '오늘은 날씨가 더우니까, 놀이터에 갔다가 수도꼭지를 이용해서 물놀이도 좀 하고, 그네도 좀 타고, 간식도 먹아야지.' 큰 줄기의 활동 내용을 머릿속에 넣어놓고 가곤 하지만 아이를 만나면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 "선생님! 오늘 산책해요!" "그러자..

[재활디딤돌] "만남을 원해요" #10

매주 1회씩 총 5 가정에 찾아간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습니다. 이전의 경험으로 비춰 보자면, 물리치료사인 제가 방문을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어려운 점이 있었어요. 많은 보호자분들이 제가 방문하는 것을 '홈티'라고 생각하신다는 것이죠. 프로그램 시작 전 '이 프로그램은 직접적 치료를 하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운동법, 스트레칭법, 재활하는 방법을 가르쳐드리는 프로그램이에요.' 라고 아무리 설명드려도, 처음 몇회기를 진행할 때까지는 잘 배우려고 하는 것 같다가도 어느샌가 정신차려 보면 제가 방문해서 홈티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게 되더라는 겁니다. (물론 직접적 치료지원이 필요한 경우도 많았지만요) ​ 그런데 방문하는 가정이 늘고, 나름의 체계가 조금 잡히니 달라진 것들이 느껴집니다. 먼저 어머님들이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