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1. 소아물리치료 이야기/A101.재활디딤돌(뇌병변)

[재활디딤돌] "워커 빌려드릴까요?" #16

왕구리 2021. 9. 17. 18:10

문득 아이 뒤에 앉아 평소처럼 허리를 펴도록 도와주는 데 집중하던 중

아이가 이제 막 힘들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많이 울던 아이였는데, 허리를 펴도록 뒤에서 잡아주면 사정없이 더 허리를 말고, 골반을 뒤로 밀어버리는 아이였거든요.

그런데 골반을 세워주면 세워주는 대로 편안하게 몇 초 이상 유지하고,

무엇보다 골반을 세우는 데(기울이는데) 거부감이 없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게 가능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머님! 문득 보니, 아이가 허리를 참 잘 펴네요."

"제가 가만 안놔두거든요 ㅋㅋ"

 

그렇습니다.

아 아이의 어머님은 참 긍정적인 분이시고, 아이를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평소에 앉아서 노는 시간이 대부분인 아이의 허리를 세워주는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하십니다.

물론, 아이가 불편하거나 힘든 감정을 최대한 느끼지 않도록 말이지요.

제가 강조한 '은근슬쩍', '무의식 중에 한 번씩' 하도록 하셨다고요.

그래서인지 집에서 놀 때도 스스로 허리를 펴는 정도도 좋아졌다고 하시네요.

 

감탄하는데, 어머님이 갑자기 방에서 워커를 들고 나오십니다.

이런 워커가 집에 있었구나.. 싶은 생각도 잠시,

어머님이 아이의 자세를 봐달라며 워커에 세우셨습니다.

집에서 많이 해주고 있다고 하시면서요.

 

한참 선자세 훈련을 많이 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이 해야 하는 아이이기에

너무 잘 하고 계시다고 하며 자세를 봐드렸습니다.

관절 안정성이 많이 떨어지고, 근력이 원체 약한 아이에다가 먹는 어려움도 있어 몸무게도 적은 아이이기에

앉은 자세에서 신체를 지탱하기 위해 골반을 뒤로 최대한 기울여 바닥에 닿는 면적을 넓게 하고

그에 따라 허리를 최대한 뒤로 둥글게 말고 그로 인한 중심을 머리를 살짝 뒤로 젖혀 균형을 맞추고 있는 아이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음에도 아직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이런 아이에게는 전방에서 지지하는 전방 워커를 보조로 주었을 때 허리가 굽어지는 자세가 더 강화될 수 있죠.

또한 아직 선자세가 완전치 않은 아이이기에, 워커를 잡고 유지하다 넘어질 수도 있는 부분을 설명드렸습니다.

 

아이에게는 후방에서 지지하는 후방 워커가 좋은데.. 싶은 생각이 들어 어머님께 이야기했습니다.

 

"어머님. 아이에게는 뒤에서 지지하는 후방 워커가 좋은데... 빌려드릴까요??"

 

눈이 동그래진 어머님은 그게 가능하냐며, 치료실에서 쓰시는 게 아니냐고 물으셨습니다.

 

"써야 하는 아이가 지금은 없어요. 만약 생기면 그때 말씀드릴게요. 지금은 아성이에게 필요한 것 같아요."

 

어머님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날은 아이의 선 자세의 의미에 대해 다시 말씀을 드렸습니다.

 

때가 되면(아이 스스로 준비가 되면) 아이는 선 자세를 하게 됩니다.

물론 여러 가지 도움(치료, 훈련 등)이 필요한 건 사실이고, 그것이 속도를 빠르게 해 줄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아이는 그 도움들을 포함하여 정말 다양한 감각을 받아들이며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만의 것들이 쌓여 지지대가 되면, 선 자세를 받아들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어떤 자세보다 재밌는 선자세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아이의 경우도 선자세를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불안하지만 재밌다, 무섭지만 재밌네? 이 정도이지 않을까요?

 

우리는 이런 시기에 아이에게 최대한 즐겁게 많이 서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눈을 마주 보고, 즐거운 감각과 경험으로 말이지요.

그렇게 자주 조금씩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가다 보면 도움 없이 서게 되고, 중심을 잡기 시작할 때 중심을 잃어 어쩌다 한 발을 떼게 되는데, 그게 보행의 시작입니다. 어쩌다 뗀 한 발이 쌓여 보행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어쩌다'를 '은근슬쩍' 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별 거 아닌 것처럼 해야 한다고도 말씀드렸죠.

아이가 넘어졌을 때 부모의 반응을 보고 아이가 놀라는 정도를 측정하는 것처럼

어쩌다 한 발을 떼는 무서운 경험도 은근슬쩍 하게 되면 그게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어쩌다는 선을 넘는 경험을 무수히도 하다 보면,

지금 어렵고 과제처럼 느껴지는 것들을 어느샌가 넘어서 있을 것이라고,

또 그때그때 닥칠 무수한 과제들을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은 '어쩌다'들이 말이지요.

 


물음표보다 동그라미를,

장애보다 아이가,

치료보다 성장을,

재활디딤돌.


재활디딤돌 프로그램은

도봉구에 거주하는 만 6세 이하의 정도가 심한 뇌병변 장애 아동과 가정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지속적이며, 일상생활환경 중심 프로그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