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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디딤돌] "만남을 원해요" #10

매주 1회씩 총 5 가정에 찾아간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습니다. 이전의 경험으로 비춰 보자면, 물리치료사인 제가 방문을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어려운 점이 있었어요. 많은 보호자분들이 제가 방문하는 것을 '홈티'라고 생각하신다는 것이죠. 프로그램 시작 전 '이 프로그램은 직접적 치료를 하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운동법, 스트레칭법, 재활하는 방법을 가르쳐드리는 프로그램이에요.' 라고 아무리 설명드려도, 처음 몇회기를 진행할 때까지는 잘 배우려고 하는 것 같다가도 어느샌가 정신차려 보면 제가 방문해서 홈티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게 되더라는 겁니다. (물론 직접적 치료지원이 필요한 경우도 많았지만요) ​ 그런데 방문하는 가정이 늘고, 나름의 체계가 조금 잡히니 달라진 것들이 느껴집니다. 먼저 어머님들이 저..

[재활디딤돌] "넘어져도 괜찮아! 잘했어! 멋진데? 도와줄까? 잡아줄까?" #9

"엄마는 왜 안 와?" ​ 약속시간에 집 앞에서 만난 아이와 엄마, 제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곤 아이의 손을 잡고 놀이터를 향해 출발한 지 몇 걸음 후 아이가 눈을 말똥 쳐다보며 저에게 물었습니다. ​ 그 전주에 놀이터에서 즐겁게 놀고 난 후 아이와 저만 놀아보겠다고 하고, 어머님께 미리 준비해달라고 연락했었죠. 어머님도 반신반의하며 도전해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집 앞, 아이에게 잘 설명했습니다. ​ "OO아, 오늘은 여기서 엄마랑 잠시 헤어지고 우리 둘만 놀다가 40분 후에 다시 올 거야. 우리 재밌게 놀까?" ​ 논다는 말에 신나서 좋다고 했는데, 몇 걸음 가다가 갑자기 의아했나 봅니다. 맨날 엄마랑 함께인 아이인데, 그럴 만도 하죠. ​ "우리 둘이 놀면 더 재밌을 것 같아서 말이야~" 별 거 아니라는..

[재활디딤돌] "다음엔 어디 놀이터로 가볼까? 선생님이랑 둘만 가볼까?" #8

"이게 운동이지~" ​ 땀에 흠뻑 젖은 아이가 슈퍼로 가는 길, 하늘을 보며 크게 소리쳤습니다. 너무 환한 미소에 기분이 좋아져 되물었어요. "운동 제대로 한 느낌이야? 재밌었어?" "응!" ​ 프로그램 시작 전, 어머님과 제가 세운 원칙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어머님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였습니다. 어머님은 힘들 거라고 하셨어요. 아이가 엄마가 있으면 자꾸 어리광을 부릴 거라고요. 그럼에도 우리는 같이 한다!라고 몇 번이고 말씀드렸죠. ​ 참 잘 노는 날도 있었지만, 힘든 날이 더 많았습니다. 안 그래도 집중력이 짧은 아이인데 어머님이 계셔서 더 짧게만 느껴지기도 했죠. 그래도 아이는 선생님이 와서 같이 논다는 사실이 즐겁다고 했습니다. ​ 뭔가 새로운 환경이 필요하겠다 싶어 아이가 자주 가는 놀이터에서..

[재활디딤돌] 어머님의 몸이 편해야 아이도 편하고, 그래야 일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7

"선생님! 그때 말씀하셨던 서고 걷는 방법 좀 다시 알려주세요." ​ 아이가 졸려하는 바람에 30분 일찍 시작하게 된 아이의 집에 들어서고, 손을 씻고 나오자마자 어머님이 건넨 말입니다. 지난주에 서고 걷는 경험에 대한 중요함을 알려드리고 간 후 집에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해보셨는데 잘 안되셨답니다. 아이가 안하려는 게 아니라, 방법이 잘못되었던 건지 아니면 불편했는지, 아무튼 어머님과 아버님이 어렵게 느껴지셨다고 하네요. ​ "어떻게 해보셨는지 보여주시겠어요?" 라고 건네니 ​ "이렇게 아이가 서고 뒤에서 여기를 잡고 이렇게 이렇게~" 어찌나 열심히 시범을 보이시는지, 보는 내내 흐뭇한 마음이었습니다. ​ "잘 하시는데요? 아마 평소에 안 하시던 거라 조금 불편하거나 어색해서 그런 걸 거예요. 아이는 그..

[재활디딤돌] 불안함으로 기운 무게추가 하고 싶음으로 기울어지는 순간을 기다려보면 어떨까요? #6

"잘 서려고 하지 않아요" ​ 아이에게 서는 경험을 많이 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 후 어머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앉아서 이동하는 아이에게 서고, 걷는 게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만 집에서 서고 걷자고 하면 잘하려 하지 않는다고요. ​ 아이가 서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정말 다양하겠죠. '서고 걸어야 하는 이유', '아이가 재미있는 활동인가, 하고 싶은 활동인가' 얘기를 하다 보니 이 아이가 서고 걷는 데 어려워하는 부분이 조금씩 명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이는 주변에 대한 관심도 꽤 있고, 다양한 움직임도 하는 아이라서 조금만 디뎌 준다면 그 디딤돌을 바탕으로 서기 동작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 어떤 방법으로 설명할까 고민하다, 아이의 발을 보며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 ..

[재활디딤돌] 이 정도의 뻗침은 염려스럽습니다. 같이 방법을 찾아봐요. #5

뻗치는 힘이 아주 강한 아이는 최근 그 힘이 더 강해져 걱정입니다. ​ 인지와 언어발달이 지난 몇 개월간 급격하게 나타나는 아이는 이제 제법 의사소통도 원활해진 모습이었습니다. 아이의 어머님께서도 인지와 언어가 발달하는 아이를 보며, 이제는 신체 긴장도에만 초점을 맞추었던 방향을 좀 더 포괄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어요. ​ 그러나 긴장도는 점점 강해졌습니다. 아이의 긴장도, 다른 말로 뻗침은 아이가 가지고 있는 강직과는 다르죠. 하고 싶은 게 많아지고,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다양해질수록 아이의 긴장도는 높아집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고, 세상을 탐색하고픈 마음이 커졌는데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으니까요. 물론 언어적인 표현도 방법이지만, 그보다 편한 건 신체의 긴장도를 올리는 것입니다. ..

[재활디딤돌] 물리치료, 줄이셔도 괜찮아요. #4

"감각이 예민해서 걱정이에요." ​ 어머님은 아이가 다양한 감각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움직임이 더 많아지고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더 많아질 것 같다고요. ​ 먹는 것에 큰 흥미가 없는 아이에게 '먹기'는 일상이 아닌 아주 어려운 과제입니다. 먹어라 먹자 먹어야지, 어르고 달래는 어머님과 입 안 벌리고, 안 씹고, 안 삼키며 무언으로 버티는 아이. 때문에 아이는 몸도 아주 작고, 마른 상황입니다. ​ 때문에 연하치료도 더 열심히 받고 싶으시고, 감각통합치료도 하고 싶고, 감각자극에 좋다는 스노젤렌 치료도 하고 싶은데 이곳, 도봉에는 마땅한 곳이 없다고 느끼고 계셨습니다. 또한 막상 그런 치료들을 하려고 하니 여러가지로 부담되는 게 사실이라고 하셨습니다. 비용적 부담, 시간적 부담. 이 두..

[재활디딤돌] 아이가 한창 시도하고, 도전하고, 즐기는 순간에는 잠시 피드백을 멈춰 주세요. #3

한 살 터울의 형아가 있는 5살 아이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양하지 마 비 뇌성마비 아동입니다. 전문가들은 중등도의 양측성 강직형 뇌성마비, 대운동기능분류 3단계로 이야기하기도 하죠. ​ 아이는 원래 움직임에 대한 욕구도 높고, 놀고 싶은 마음이 아주아주 큰 아이이죠. 또래들처럼요. 그러나 특히 형아와의 놀이에서 따라가기 힘들어 속도 많이 상하는 아이입니다. ​ 아이는 치료를 싫어합니다. 조산으로 태어나 아주 어릴때부터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아왔는데, 그때부터 싫어했다고 하네요. 지금도 많이 운다고 합니다. ​ 이런 친구들은 보통 보호자(대개는 엄마)가 같이 있으면 치료 진행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눈치 백단이라, 어떤 상황인지, 자기가 비빌 수 있는 구석이 있는지 없는지 기가 막히게 알고 있고, ..

[재활디딤돌] 아이에게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부여해주세요. #2

"선생님! 물리치료 선생님(파견 홈티 강사)이 오셨을 때 영상 보여드릴게요!" ​ 오늘 2주 만에 들른 아이의 집에서 어머님이 제가 손을 씻고 나오자마자 영상을 자랑했습니다. 눈앞의 영상에는 아이가 물리치료 선생님이 잡아주는 한 팔의 도움으로 한 발 한 발 걷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 "선생님! 아이가 이렇게 집에서 걷는 건 거의 1년만인 것 같아요." ​ ​ 저는 강사 선생님들과 소통하며 미리 그 사실을 알고 있었죠. 뿐만 아니라 작업치료 선생님이 진행하는 연하치료에도 큰 효과를 보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지만 모르는척, 어머님께 정말 멋진 아이라고, 잠재력이 대단한 아이라고 칭찬했죠. ​ 아이가 집에서 걷지 않았던 이유. 아이에게 '걷기'가 가지는 의미. ​ 제가 오늘 어머님께 드렸던 말씀은 이 두 가..

[재활디딤돌] 재활도 일상, 그러니 살아가는 환경 안에서. #1

한 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아이들의 재활이 필요한 그 순간 바로, 살고 있는 집터에서, 기간의 제한을 갖지 않고, 진행된다면 어떨까요? ​ 그것이 재활이 필요한 가족의 입장에서 당연한 게 된다면, 그들의 삶의 변화는 어떠할까요? 또 그들에게 재활서비스를 지원하는 전문가들의 삶은 어떠할까요? 며칠 전, 한 아이의 집에 방문하니, 아이의 어머님이 나를 만나자마자 하는 말씀이 "선생님! 저번에 들리시고 간 다음에요, 바로 그다음부터 우리 아이가 얼마나 손을 많이 쓰는지 몰라요! 남편이랑 저랑 너무 신기해서 놀라기만 했어요." "그랬군요! 정말 멋지네요! 그날 말씀드린 것처럼 아이가 손을 많이 쓸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기회를 주고, 격려해주기만 한 것일 뿐인데요! 나머지는 다 어머님이 하셨잖아요?" 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