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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청소년 물리치료는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까?(ICF-CY, 6개의 F-words를 중심으로)

왕구리 2021. 8. 23. 17:48



https://youtu.be/lY06GHxryRE


안녕하세요. 소아물리치료사 왕올챙이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제가 치료를 진행했던 휘서라는 아이와 찍은 영상을 바탕으로 소아물리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위 영상은 저와 1년(실제로는 1년 4개월쯤..) 간의 개별물리치료를 마치고 끝나는 날 찍은 영상입니다. 영상의 경우 이 아이에게 선물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유튜버가 꿈인 휘서는 자기의 휘서TV가 10만 구독자가 되는 날 저에게 맛있는 걸 사준다고 약속했었거든요. 물론 지금은 구독자가 1명입니다만...;;
그래서 찍고 편집해서 선물한 영상입니다. 휘서, 휘서의 어머님, 실습생들 등 나온 모두에게 동의를 받아 저희 복지관 유튜브 채널에도 업로드했죠. 나름 뿌듯하게 생각하며 아내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아내도 감동하며 감상한 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이런 질문을 던지네요.

" 그런데 이게 물리치료야? "
" 응 이것도 물리치료야. 아이들 물리치료는 이런 식으로도 진행될 수 있어. "
라고 했지만, 사실 그렇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물리치료행위랑은 조금 다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숙제가 하나 더 남게 되었습니다.

이 영상이 어떤 소아물리치료적 의미를 가지는가? 이렇게 진행되는 활동도 소아물리치료로 볼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만 직업인으로서의 역할이 끝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것에 대해 6개의 F-words(fun, family, friends, future, function, fitness)와 ICF-CY를 기반으로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휘서는 GMFCS level 3, MACS level 2, CFCS level 1, moderate spastic bilateral cerebral pasly 아동입니다. 보조도구 없이 보행은 아주 제한적이지만(아주 익숙하고 표준화된 환경에서 5 발자국 정도 떼는 게 가능한 정도입니다) 워커라는 보조도구가 있다면 거의 모든 실내 / 대부분의 실외 활동에서 독립적인 이동이 가능한 아동입니다.
특히 이 아이는 보조도구의 유무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신체적 어려움 때문인 것은 당연할 수 있겠지만 그간 아이를 관찰하고, 물어보고, 또 어머님께 들어본 바로는 아이의 심리적인 영향도 꽤 큰 것으로 보입니다. 뇌성마비 아이들은 넘어지는 것(특히 뒤로 넘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큰데, 이 아이는 그 정도가 조금 더 큰 아이입니다.
조산인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많은 불안감과 함께 자랐고, 어머님 역시 아이를 과도하게 보호(?) 하기도 했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다행히 아이와 제가 수다스럽고, 아무 말 대잔치를 좋아하는 등 성향이 잘 맞은 덕분에 아이와 제 물리치료 방향은 이 '불안함'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줄어든 불안감만큼 활동성을 높이고 해보지 못했던 과제에 도전하는 정도를 늘릴 것이냐가 관건인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럼 이 아이에 대해 ICF-CY를 기반으로 조금 더 풀어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2019년 12월 4일 아이의 초기 ICF평가지 안 내용입니다.

요구사항을 신체기능/구조와 활동/참여 영역에서 보호자가 말씀하신 그대로 적었습니다.


일단 ICF-CY를 개별물리치료에서도 사용하면 좋은 것 중 하나는 활동/참여 영역에서의 욕구와 상황을 넓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넘어졌다가 스스로 일어서서 걸어가는 것이 잘 되지 않았었죠. 이때의 아이에게는 '무서움' 혹은 '두려움'의 무게가 '움직임에 대한 동기'의 무게보다 무거웠죠.

전반적으로 아이는 소극적이었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도, 그걸 요구하는 것도, 관철시키는 것도, 다른 사람이 들리도록 큰 소리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쉽지 않았었죠. 무엇보다 제시한 몇몇 개의 과제에 대해 도전하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완전한 라포가 형성되기 전인 것을 감안, 아예 초면은 아닌 상황)

어머님은 이런 신체 기능/구조 측면에서 좋아진다면 학교에 갔을 때 좀 더 활동적인 아이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계셨습니다. 신체 구조/기능과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ICF framework 안에서 보자면 중등도의 강직형 양측성 뇌성마비라는 건강상태(health condition)와 신체(대근육, 소근육, 심리적 영역 등) 기능 및 구조 영역에서의 어려움이 활동과 참여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죠.

ICF-CY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가 현재 신체 기능에서 가지고 있는 어려움이 결국 어디로 연결되는가를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게 결국 최종적인 욕구이며, 치료의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의 활동/참여 영역에서 활동성이 커지고, 사회성이 조금 더 좋아지면 좋겠다. 다른 말로 조금 풀어 해석하자면, 또래 아이들과의 놀이/관계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잘 참여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으며, 그것을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신체 기능과 구조에서 어려운 점, 그중 물리치료 행위로 개선시킬 수 없는 항목(예를 들면 뇌의 구조 s110, 시각 기능 b210등)을 제외하고 목표를 위해 우리가 함께 개선시킬 수 있는 것들은 크게 보면 두 가지 분류로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는 근/골격계적인 부분입니다.
넘어졌다가 스스로 일어나기 위해 할 수 있어야 하는 물리적 요소들입니다.

관절의 가동 기능 b710, 근력기능b730, 근긴장도기능b735, 근지구력기능b740 등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풀어보자면,b710(관절의 가동기능)의 경우 b7101.2 여러 관절의 운동성에 중등도의 손상이 있다고 나타납니다. hip, knee, ankle joint 등 흔히 말하는 강직형 양하지마비 아이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이죠.

b730(근력기능)의 경우 b7303.2 하반신의 근력에 중등도의 손상이 있습니다. gluteus m. 들, Q. m., hamstring, 및 hip abdunction m., 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ankle의 dorsi/plantar flexion m. 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AFO를 상시적으로 착용하고, 이에 대한 거부 및 어려움이 없는 아동이기 때문입니다.

b735(근긴장도기능)의 경우 b7353.3 하반신 중 hamstring과 hip adductor에서의 높은 긴장도가 있습니다. 신체를 바로 세우지 못하게 하여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hip flexor를 비롯한 이 근육들의 단축과 늘어나지 못하는 부분이 아이에겐 큰 숙제입니다.

b740(근지구력기능)의 경우 b740.1 아이의 근지구력은 부족하지 않다고 보입니다. 어떠한 자세를 유지하거나, 동작을 취할 때 근육이 버텨내는 정도는 경미한 손상이 발견됩니다.그 외 통증, 수의적/불수의적 움직임 기능 등 다 손상 정도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이 중 제 시간 내 물리치료적 접근을 통해 개선시킬 수 있는 부분은 근력과 근지구력입니다. 가동 기능과 긴장도는 치료 시간 초반 준비과정에서 스트레칭과 관절운동, 마사지 형태로 접근하기는 하지만, 아이의 해당 항목의 본질적인 개선을 시킬 수 있다고 보진 않습니다. 저는 소아-청소년기에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그렇게 느끼고 있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시술/수술 외에 '일상생활에서의 접근'으로 보고 있고, 그렇게 지도합니다.

어쨌든 보호자의 욕구처럼 아이가 넘어졌다가 일어서는 동작에는 근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워커를 주로 사용하는 아이이기 때문에 필요한 기능은 넘어진 자세-> 손을 뻗어 워커를 잡기->몸을 일으키기->상체의 힘으로 몸을 순간적으로 들어 올리기->하지의 힘으로 받쳐 몸을 세우기->다리를 점차적으로 옮겨 선 자세 완성!입니다.이를 위해 어떤 운동이 좋을까? 고민했을 때 그 동작을 실제로 하는 게 제일 좋다는 판단을 하였고, 워커와 함께 다양한 활동(몸을 중력 방향으로 움직였다가 다시 일어서기를 포함하는)을 하며 상체와 하제 근력을 동시에 강하게 만드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영상에 나오듯 치료 초반 공을 5개 던지기도 쉽지 않았던 아이가 마음만 먹으면 스쾃 동작을 50개 이상 쉬지 않고 하게 되었을 때는 바닥에서 선 자세로 바꾸는 데 큰 어려움 없이 빠른 속도로 가능하게 되었죠.

흔히 물리치료 분야에서 보는 이런 항목 외에 제가 주목한 항목이 두 번째로, b1. 정신기능과 관련함입니다.

b126(기질과 성격기능) 중 b1264.3 경험에 대한 개방성에서 초반 아이의 모습은 대부분의 활동에서 무섭다, 못하겠다라며 몸을 움츠리는 모습이었고, b1266.3 자신감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b130(에너지와 욕동기능) 에서는 제가 보는 것과 보호자가 보는 게 달랐죠. 아마 라포가 형성되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항목과 관련하여는 제발 하고 싶은 것 좀 그만 말해..라고 할 정도로 충만해졌으니까요. 아이가 가지고 있었던 본래의 모습을 저와 함께도 드러낸 것이라고 봅니다. 꼬시기 대작전이 성공했다고 자평합니다. b1301.0(동기부여)가 잘 되었다고 볼 수 있겠죠.


활동과 참여 영역에서는 d163(문제 해결하기)에서 d163.12로 제가 본 아이의 장점이기도 한데, 아이가 과제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이 기본적으로 좋고, performance와 capacity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과제 상황에서 생각해서 해결하라는 주문을 주었을 때, 표준화된 치료실 환경(안전하고 짜여있는)에서 해결하는 정도보다 다양한 놀이 상황 및 외부 상황에서 만들어내는 모습이 더 창의적이며 수월했다고 느껴졌습니다.

d410(기본자세 바꾸기)에서는 d4100~d4107까지 대부분의 항목에서 수행에 어려움은 없지만, 시간이 꽤 걸리고, 상황에 따라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d415(자세 유지하기)에서는 자세 바꾸기를 기준으로 비교적 잘 수행하는 모습이었고요.

d445(손과 팔의 사용)에서는 제 관점으로는 대부분 어려움은 없다고 보였습니다. 자세가 무너지고, 불안한 동작에서 손과 팔의 세밀한 사용이 어렵기도 했지만, 그 부분은 따로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불안한 동작을 반복해서 훈련했을 때 좋아지기도 함)

d450(걷기)에서는 모두 AFO와 후방 지지 워커를 사용하였고, d4500.1 가끔 장애물 등으로 어렵고, 방향 전환이 쉽지 않은 경우가 있지만 잘 수행하는 모습이었고, d4501.3(장거리) d4502.3(다양한 지면) d4503.4(장애물 돌아 걷기) 등에서는 힘들어하는 모습입니다.

d460(다양한 장소에서 이동하기)에서는 d4600.1으로 집 안에서의 이동은 주로 기기였고,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으나, d4601.2 집 외의 건물 안, d4602.2 집 외 건물 밖에서는 주로 휠체어를 이용했고(수동), 보조자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d920(레크리에이션과 여가) 항목에서는 d9200.0 주로 정적인 놀이 상황에 참여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보고하셨으나d9201.4 스포츠에 참여하는 것은 완전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많이 아쉬워하기도 하셨죠.

환경 영역에서 보자면

e120(개인의 실내외 이동과 수송용 제품 및 기술) 항목에서 e1201+1으로 대답하셨고, 주로 휠체어에 도움을 받는 촉진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대답하셨으나,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고 하셨습니다.

e150(공용 건물의 설계, 시공과 건축물 및 기술)에서는 e150.3으로 많은 불편을 겪고 계시는 저해요인으로 대답하셨고, 주로 화장실 등을 말씀하셨습니다.

꽤 길게 풀어냈네요. 이러한 부분 때문에 ICF-CY를 임상에서(개별물리치료) 써먹기가 쉽지 않습니다.ㅠ

정리하자면 보호자의 욕구인 넘어지기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활동성을 높여서 또래 활동 및 학교생활을 더 잘해나가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목표를 갖고 열심히 훈련했다입니다.


그런데 아이의 욕구가 빠졌죠?

처음엔 확인하기 힘들었고, 중간중간 너무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따로 적지 않았습니다. 킥보드, 축구, 어드벤처, 눈 가리고 걷기, 뒤로 걷기, 엎드려서 썰매 타기, 공 던져서 실습 선생님 맞추기, 나(치료사) 때리기 등 너무 많았어요. 이런 욕구들은 꼬시기 대작전의 좋은 원료로 써먹었습니다.

마지막 최종 목표는 10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 되기입니다. 진심을 담아 응원하고 있습니다.

제가 판단한 아이는 활동반경이 좁습니다.

제가 개념화하고 있는 활동반경은 두 가지 영역인데요,

하나는 신체적 안정성을 바탕으로 넓혀가는 신체적 활동영역입니다. 이를 구성하는 주된 요소는 물리적인 신체 요소들이에요. 근력, 근지구력, 안정성, 긴장도 등입니다. 뇌성마비 아이들이 주로 힘들어하는 것이며, 물리치료사인 제가 주로 보는 요소들이지요.

둘은 심리적인 안정성을 바탕으로 도전하는 심리적 활동영역입니다. 이건 주로 경험, 의지, 양육방식, 성향, 환경 등 우리가 볼 수 없는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떤 경험을 했었고, 어떠한 성취의 모습이었을까? 좌절을 겪고, 해소하는 과정은 어땠을까?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성향은 아이의 신체적 어려움과 어떻게 결합하나? 등 입니다.

아이와 어머님께 직접 설명할 때 역시 원을 그리며 설명했습니다.

아이가 가진 좁은 원을 점점 넓혀나가자고 말이지요. 도전하고 성취하는 즐거움을 활용해서 신체적 어려움을 개선하는 훈련을 만들어보자고요. 훈련은 힘들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린 '지옥의 훈련'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지옥의 훈련을 끝내면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훨씬 더 풍성해질 거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했던 활동들 중 몇개를 잠시 소개해볼게요.

킥보드를 너무나도 타고 싶어 했던 아이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아이에게 실제로 킥보드 위에서 유지하며 다양한 수다 경험을 떨며 ㅋㅋ 생각한 것보다 별로 무섭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킥보드 활동의 주요 요소는 한쪽 다리에 체중을 지지할 수 있고, 무릎관절을 조절하며 굽혔다 펼 수 있는 기능입니다. 불안하긴 하지만 상지로 손잡이를 잡아 보조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에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죠. (fitness, fun) 처음 킥보드에 올라섰던 날을 기억합니다. 치료사인 저의 모든 힘으로 아이를 지지해주고 한발 한발 떼는 게 너무 힘들었던 시간이었어요. 그 후 종종 킥보드 위에서 폭풍 수다와 지옥의 훈련을 거듭한 끝에 컨디션에 따라서 다르지만 꽤 긴 거리를 약간의 도움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죠. 종결 몇 주 전 킥보드 타기를 성공하면 사주겠다는 외할아버지의 공약에 의해 더 힘들게 연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family).

실습 선생님과 함께 한 신문지 놀이도 아주 재밌었습니다. 케이스 발표 당사자였고, 세웠던 목표를 직접 진행해보게 하는 것은 제가 실습생을 지도하는 데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꽤 많은 활동 중 신문지 놀이를 했고, 실습생 3명과 아이와 저 이렇게 3:2로 편을 먹고 신문지게임을 진행했죠. 결과는 우리의 승리였습니다. 조용조용하고 소심하던 실습생들이 갑자기 돌변해 우리를 이겨먹으려고 하는 통에 쉽진 않았지만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안 그래도 긴장되는 상황이 되면 신체 기능이 어려운 아이인데, 경쟁이라는 요소를 붙이니 훨씬 더 잘하더라고요. 한 발로 버티는데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fun, fitness, function)

눈이 정말 많이 왔던 어느 날,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진 "썰매 타봤냐?"라는 질문에 눈이 반짝였습니다.

한 번도 안 타봤다니, 뭔가 아쉬우니 우리 복지관에서라도 타보자! 하면서 미끄럼 보드를 2개 묶어 경사로로 갑니다. 이게 될까? 하면서 탄 경사로 썰매에 붙인 이름은 '어둠으로 가는 어드벤처'입니다. 어드벤처를 탄 첫날, 아이가 집에 가면서 어머님에게 한 말은 바로 이거였다고 합니다.

"엄마! 오늘이 내가 태어나서 최고의 날이었어!"(fun, function)

짜릿한 경험을 맛본 것입니다. 아이의 머릿속에는 애니메이션 인사이드아웃에서 나오는 핵심 구슬처럼 짜릿한 기억이 자리 잡게 된 것이겠죠! 그 후로 '어둠으로 가는 어드벤처'를 하기 위한 '지옥의 훈련'이 시작됩니다. 제가 무엇을 시키던, 어떤 어려운 과제를 시키던 최고의 노력으로 하는 아이가 되었죠. 그렇게 될수록 우리의 어드벤처는 다채로워졌고, 과감한 도전이 이어졌습니다.(fitness)처음 몇 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어드벤처가 격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님이 오셔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선생님 저번에 어드벤쳐 하고 간 다음에요, 아이가 센터에 갔는데 너무 잘하는 거예요. 평소에 걷던 것보다 훨씬 잘해서 센터 선생님도 깜짝 놀라고 아이도 정말 뿌듯해했어요."

저도 진심으로 기뻐하면 어머님께 설명드렸습니다.

"어머님! 저도 정확히는 설명할 수 없지만, 아이의 활동반경이 넓어진 것 같아요.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요."


확실히 아이는 활동반경이 넓어져 있었습니다.

처음 봤던 모습과는 정말 다른 모습들이 아이에게 드러나고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점점 더 많은 작은 성취를 맛보게 되고, 그것을 발판 삼아 조금씩 활동반경을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이 활동반경은 또래관계에서도 영향을 미칩니다. 얼마 전부터 펜션에서 만난 친구 이야기를 부쩍 많이 하는 아이는 친구가 참 중요한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friends)

이 활동반경은 아이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치료의 종결 즈음, 항상 전동휠체어로 복지관으로 들어서던 아이가 워커를 잡고 들어오게 됩니다. 무심한 듯 여쭤보니, 어머님 스스로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모든 일상생활에서 최대한 워커를 써야겠다고 결심하셨다고요.(family, future)

그날 어머님과 나눈 20분 정도의 대화에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참 많이 뿌듯했습니다. 아이는 정말 좋은 지지체계를 가지고 있으니 잘 자랄 것 같다고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이의 종결 날,치료 후 어머님과 30분 정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주로 아이의 미래에 관해서였죠.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참 많았지만, 제가 드리고 싶었던 핵심은 바로 이 말이었습니다.

"어머님과 아이, 아버님이 이루고 있고, 앞으로 살고 싶은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어떤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이는 가족 구성원으로서 그 방향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과거엔 아이의 자세, 보행, 긴장도 이런 게 참 신경 쓰이셨겠지만, 이제부턴 약간 뒤로 밀어두셔도 될 것 같아요. 아이가 그때그때 원하는 것들을 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이는 앞으로 평생 재활을 하며 지냅니다. 보통 아이들은 재활에 대해 참 부정적이에요. 그렇지만 무엇이든 효과를 내려면 그게 즐겁게 느껴져야 하기도 합니다. 힘들지만 즐겁게, 어렵지만 즐겁게 말이죠. 과정을 겪어낸 후의 성취는 참 강력하고, 그게 반복된다면 보다 더 즐거운 재활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와 만나는 아이들이 이 짜릿함을 맛보고 앞으로의 재활에서 자꾸 그것을 갈망한다면, 조금 더 스스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자랍니다. 아주아주 여리고 조그맣던 아이들도 어느새 소아기를 넘어 청소년기에 도착해서 빠른 철길을 달려 통과하고 있습니다. 소아 청소년기 뇌성마비의 물리치료는 모든 것이 빨리 지나가는 이 속도를 어떻게 잘 넘길지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치료의 꼴이 있고, 모두가 소중합니다. 저 역시 이렇게 아이들과 즐기며 활동하는 치료의 모습에서 많은 보람을 느낍니다.

조금 더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는 전문가로서 우리의 치료 행위가 뇌성마비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로써 어떤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지 더 드러내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과거에서 다를 것 없이, 폐쇄적인 공간에서 나만의 치료법으로 나만 옳다고 치료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간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20분 남짓의 영상과 함께 아이를 만나며 했던 고민들, 실천들, 의미들을 포함한 빛나는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이 영상과 글을 계기로 소아청소년 뇌성마비 물리치료에 대한 제 나름의 결과물을 계속해서 만들어내 볼까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상상하면 가슴 떨리고 행복하다는 사실이 참 좋습니다.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진심으로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