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이야기

#10. 달리기

왕구리 2025. 2. 7. 23:50

새로운 곳에 갔을 때,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나이를 먹을수록, 여행을 떠날수록

다른 짐보다는 조깅화 하나, 책 하나를 꼭 챙기겠노라는 생각이 커진다.

 

이번 미국여행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달리고 싶다.

 

꽤나 간절했다.


바닷가에 갔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힐튼 헤드 아일랜드라는 곳이다.

멋진 바닷가는 수 없이 많이 봐왔으나

이곳처럼 광활하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초광각렌즈를 끼고 세상을 바라본 듯,

내 시야에 걸리는 모든 풍경에 수평선이 그어져 있다.

수평에 강박이 있는 나로썬 희열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따뜻한(덥기까지 한) 서배너 날씨와는 다르게 찹찹한 바람이 분다.

다행히 햇살은 따뜻해 담요를 덮고 따수움을 맛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달리고 싶다.

 

못챙긴 신발 대신 맨발로,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의 먼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 시선의 끝에 닿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저기까지 달려보자.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무언가 있겠지. 한번 가보자.

 

거리가 가늠되지 않는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맨발이라 물기를 머금고 딱딱하게 굳은 땅은 발이 아팠다.

적당히 촉촉하게 폭신한 곳을 따라 발을 내딛었다.

 

이렇게 기분이 좋다니.

아까 춥게만 느껴지던 바람이 사랑스러워졌다.

 

새로운 곳에서 느끼는 낯선 감각들을 달리기와 함께 온전히 느껴본다.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을 차분히 정리해 본다.


먼 곳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까지는 2km의 거리였다.

출발하기 전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생각했던 그곳은

도착하고 보니,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에 겹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백사장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은,

작은 나무들의 구분선 뒤로 다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내가 본모습, 내가 알던 것, 나의 생각

 

웃음이 났다. 

뒤돌아 다시 가면서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고,

갈 때와는 다른 낯선 감각으로 새롭게 떠오른 생각들을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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