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표지판이 보이면 속도를 0으로 만들고, 1~2초 주변을 살피고 출발한다.
스쿨버스가 정차하면 같은 도로뿐 아니라 반대편 도로의 차들도 모두 멈춘다.
미국의 문화 중 가장 재밌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자동차와 그와 관련된 부분이다.
대도시라면 다르겠지만, 이곳 서배너는 교외 지역이기 때문에 자동차가 없으면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인도도 없는 경우가 많다.
만 16세가 넘으면 운전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얼마간의 슈퍼바이저와의 동승 기간을 보내고 나면 스스로 운전을 한다.
가족 구성원의 숫자에 따라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기도 하고,
차고에서 웬만한 차량 정비는 스스로 한다.
자동차는 이곳 사람들에게 필수재인 셈이다.
그중 재밌는 것은 멈춤에 대한 약속이다.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STOP 표지판.
내가 머무는 섭디비전 안에도 각 갈림길, 교차로마다 표지판이 위치해 있다.
이 표지판이 보이면 차를 멈춘다. 누가 보던 안 보던, 사람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모든 차들이 이 약속을 지킨다.
이 멈춤의 기준은 안전, 그중에서도 사람에 대한 안전이다.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에서는 무조건 멈추고 주변을 살핀 후 출발하라는 뜻.
이 강력한 기준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동의하고, 문화로 받아들인다.
스쿨버스도 마찬가지다.
사람, 그중에서도 약자에 대한 기준이 우선인 미국 사회에서는
어린이, 미성년 학생들의 안전에 대해 더욱 강력한 멈춤을 요구한다.

생각해 보면 멈춤이란 나에 대한 나 스스로, 혹은 상대의 영향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행하고자 할 때, 내부/외부적 요인이 있을 때 멈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거리에서 난 직진을 하려고 하는데,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와 멈춰 기다린다.
매일 신나게 논다. 끊임없이 놀고 싶은데, 이제 밤이 늦었다고 엄마가 그만 놀라고 한다.
맛있는 음식이 한 상 차려져 있다. 계속 먹기에는 너무 배가 불러서, 혹은 살이 찔까 봐 그만 먹는다.
이전처럼 일을 하기 어렵다. 체력과 집중력이 점점 떨어져 일을 멈춘다.
멈춤이란,
나를 돌아보게, 혹은 돌보게 하는 행위이지 않을까?
나를 멈추게 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특히 내 마음의 멈춤에 대해.
가족이란 폭력적 관계를 내 마음이 제동 걸었다.
잘 해내고 싶은 욕심에 기인한 불안이를 동료가 멈춰주었다.
무절제한 음주와 스트레스로 버티지 못한 몸이 신호를 보내 경고했다.
일상이 버거웠나보다.
멈춤이 필요했다.
큰돈, 장기간의 휴가, 일상 살이의 중단.
미국 여행이란 결심을 아무렇지 않게, 혹은 간절하게 결정하고 떠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이 자체가 나에게, 내가 나에게 보내는 짧지 않은 STOP 표지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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