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 책을 내가 안 샀으면 어쩔 뻔했어~ 이건 내가 꼭 사야 했겠지? 안 그랬으면 큰일 났겠지?"
"응! 아빠도 그렇게 생각해! 집에 공룡 책이 정말 많지만 말이야"
"맞아~ 집에 있는 공룡 책들이랑은 달라~ 이 책은 정말 멋져"
"오늘 서점에 오길 정말 잘했다! 이 책을 살 수 있었으니까"
"맞아! 너무 기분이 좋아. 그럼 쌀국수 먹으러 갈까?"
얼마 전 아내가 일정이 있는 사이, 주니와 함께 버스를 타고 중고책 서점에 다녀오며 나눈 대화예요.
어찌나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잘 찾아내던지, 슬슬 따라다니기만 하면서 책 들어주고, 함께 읽어보기만 해도 즐거운 시간이었죠.
두권만 고르기로 약속했던 터라, 한 권은 커다란 고철곰돌이가 나오는 책을, 다른 한권은 공룡백과를 골랐어요.
공룡에 심취(심취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하고 있는 주니는 꽤 두껍고 무거운 책을 하루 종일 꽁꽁 들고 보고 또 봤습니다.
어제 아침,
졸린 눈을 부스스 비비며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또 다른 공룡 책을 찾아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 아이들의 이름, 몸무게, 키, 습성(?), 공격도구(?) 등을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는 것이었죠.
아가 주니 때부터 책사랑이 남달랐어요.
아마 책을 좋아했고, 그래서 좋은 책을 많이 물려준 사촌 형아 누나의 영향이 컸겠죠!
태어나기도 전부터 집에 책이 많은 편이었으니 말입니다.
도봉구에 있는 기적의 도서관은 주니에게 최고의 놀이터였죠.
아가 주니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유아실이 있는 도서관은 우리가 종종 찾던 휴식처였습니다.
많은 책 보기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엄마랑 보는 책 보기예요.
어느 날은 한자리에서 한 권 두 권 보다 보면 옆에 주르륵 책이 쌓여 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회도 다녀오고요.(그날 기분 최고라 거의 날짐승처럼 돌아다녔;;;)
할아버지에게도 읽어달라고 하고요.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어요. 그래서 우리 가족의 외출 짐에는 꼭 책이 포함됩니다.
특히 KTX에서는 필수예요. 좋아하는 책 몇 권 있으면 특별히 힘들어하지 않고 잘 지냈답니다.
심지어는 제주도에서도 분위기 좋은 도서관이 있다길래 가보기도 했고요.
기적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식당에서도 탐독하다가
식당 이모가 너무 신기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저 책은 이제는 거의 책이라기보다는 집을 만들기 위한 도구가 되었고요.
집 앞 도서관의 유아실에서 노는 걸 좋아하고,
아빠와 단둘이 탄 비행기에서는(아빠라 책을 못 챙겼더니)
읽을거리가 없자 저런 거라도 보고요.
처음 떠난 우리만의 캠핑에서도 읽던 책.
캠핑에 빠져 만든 베란다 캠핑장에서도 아빠와 책.
못쓰는 매트로 만든 사탕 쿠션 위에 걸터앉아서도 책
가장 친한(사랑해 죽고 못 사는) 친구와도 책을 보며 이런저런 토론을 하고 있지요.
주니에게 책이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자 세상을 알아가는 도구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지만 주니를 포함한 제가 만나는 도담 아이들은 대부분 책을 좋아합니다.
바바파파 시리즈를 줄줄 외고 있어 책 읽어주는 아빠가 목이 아프다고 하는 주니의 절친도 있고,
뭘 하고 놀다가도 책을 읽어주는 소리가 들리면 만사 제쳐두고 어느샌가 다가와 함께 책을 읽어주는 형도 있죠.
대부분 우리 도담 어린이집 아이들은 아가 때부터 책을 읽고 싶으면 아무 거리낌 없이 선생님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했고,
선생님들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책을 읽어주셨어요.
맞벌이라 매일 시간을 보내는 야간반 선생님들도 역시 어찌나 책을 재밌게 읽어주시는지,
가끔은 주니가 엄마 아빠가 왔는데도 책 읽던 것만 읽고 가겠다고 기다리라고 하는 일도 있지요.
선생님-아이의 관계보다는
부모 혹은 부모만큼 가까운, 혹은 친구와도 같은 관계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무리 아이를 사랑해도, 아이가 읽어달라는 책이 부담스러울 때 많잖아요. 은연중 드러나는 그 감정을 아이들은 캐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아이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집에서 책을 많이 접한다는 사실은 역시 도담에서 생활하기를 잘했다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책에는 수많은 세계가 있습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보는 책에는 특히나, 이 세상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과 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죠.
책과 연결된 세상을 탐구하며 확장시켜내는 것, 이 역시 도담이라 가능했다 생각합니다.
뒷산, 공원, 산 놀이터, 텃밭.
계절이 바뀌며 자라는 식물을 느끼고
책에서 본 동물이 살고 있는 자연을 보고 느끼는 것.
도담이 우리 아이들이라는 식물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주는 물과 햇빛, 바람과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에 자리를 깔고 풀을 관찰하고
형님들이 없는 텃밭에서 소심(?)하게 작물을 관찰하고(저 땐 아가반이라 ㅋ)
일단 나무 아니면 풀을 손에 잡고 있고
아니면 나무에 타고 있거나
아니면 나무를 옮기고 있거나(협동해서)
나무껍질을 떼고 있거나
퍼질러 앉아 쉬고 있죠.
엉덩이로 산을 내려오고 있거나
우리만의 뒷산에 만들어진 밧줄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형아가 되면서는 무도 키워서 깍두기도 담가 먹고
마당 모래놀이터에서 각종 중장비와 함께 공사도 하며
예쁜 꽃잎으로 팔찌를 만들고
추위를 뚫고 자라난 식물의 크기를 손으로 재보거나
때가 되면 열리는 열매들을 선생님의 지도 아래 안전하게 냠냠 따먹어보고
붉은빛 가을에는 낙엽으로 신나는 장난을
그러다가 나무에 누워 휴식을 취하죠.
이 모든 활동이 책과 연결되어 조금씩 그리고 더 깊이 세상을 알아가고 있는 주니와 도담 아이들입니다.
이렇게 자란 주니는
지리산 노고단까지 한 번도 안 쉬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튼튼한 다리를 가지게 되었고요.
어느 날 갑자기 글씨를 쓴다며 펜을 들고 이리저리 하다가 결국 만들어낸 생애 첫 이름
책에 나오는 동물을 너무 사랑해서 집에 있는 모든 인형들을 돌봐주느라 피곤해지고,
외출할 때 꼭 한 마리씩 데리고 나가주기도 하고
자연을 담뿍 즐기는 아이로 자라나고 있지요.(소심하지만)
본인이 받은 사랑을 다른 동생들에게도 나누어주기도 하는 형아로 자라나고 있지요.
이렇게 주니를 키워준 책은 도담의 다른 동생에게로 가서 날마다, 순간마다 읽히고 보이며 책들도 즐거운 대화를 나누겠지요.
어떤 존재로 자라날지 모르겠지만,
하나 분명한 건 책과 가까운 삶은 그렇지 않은 삶보다 풍성하며
세상을 이해하는 깊이가 더 깊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이 부모로서의 마음이겠고요.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든 걸 해줄 수 없는 부모의 미안함도 있잖아요.
부족함의 한편을 도담이 잘 채워주고 있어 정말 감사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도봉구 방학3동에는 원당샘 공원이 있습니다.
도담공동육아어린이집은 원당샘 공원 바로 옆에 있는데요.
그래서 도담 아이들의 마당?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제 집 뛰어다니듯 다닙니다.
그 입구에 어느 날부터인지 펜스를 걷어내고 공사를 하기 시작했네요.
알아보니, 도봉구에서 짓고 있는 한옥도서관이라고 합니다.
한옥도서관이라니!!
눈이 반짝하며 주니에게 이야기해주니
"그럼 터전 갔다가 들러서 책 좀 보고 가면 되겠네!" 합니다.
도봉구에 공공 한옥도서관이 생긴다면 도담 아이들이 생활하는 앞마당에 나름의 전용 도서관이 생기겠네요.
이렇게 좋은 환경을 누리는 아이들이라니.
도담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 도담하는 우리의 삶이 참 다행이고,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이제 막 아이를 키우기 시작한 분들이 있다면 조심스레 제안드리고 싶네요.
함께 도담하며 '우리'의 아이를 키워보자고요.
도봉구립 한옥도서관과 함께,
도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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