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 이야기

지역(지자체) 기반의 지역장애아동지원센터 모델과 역할

왕구리 2026. 2. 26. 07:35

지역장애아동지원센터,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1화. 지역장애아동지원센터 연재를 시작하며
2화. 제도와 흐름: 설치가 가능해지기까지의 변화
3화. 역할과 기능: 무엇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나
4화. 현장과 쟁점: 설치 이후 운영에서 마주칠 문제들
5화. 운영모델 제안: 자치구 단위 모델과 ‘발달136센터’ 사례
 


 
지난 글에서는 광역 단위의 지역장애아동지원센터가 설치된다면 마주치게 될 쟁점과, 제가 예측하고 기대하는 역할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의 글을 종합해보면 장애아동복지지원법에 명시된 지역장애아동지원센터 설치가 현실화되었고, 이에 따라 중앙 단위에서 이루어지던 장애아동 관련 서비스 전달체계가 보다 지역으로 확산·세분화되어 가는 흐름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각 시·도 단위의 공통사업과 지역의 상황에 맞는 특성화 사업이 만들어질 것이고, 이를 직접 수행하거나 지자체와의 협업을 통해 풀어나갈 가능성도 큽니다. 그렇다면 실제 지자체에서는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을까요? 마지막 글에서는 현장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현장에서 만나는 대표적인 사례를 영유아 중심으로 소개하고, 지자체 모델로 소개해드릴 발달136센터의 사업 구성과 의미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생애주기]

 

 

지역의 사례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돌을 맞은 아기의 부모가 건네는 감사 인사에 담긴 단어는 ‘생존’입니다. 누군가(대부분)에게 건강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며 별일 없이 자라는 것이겠지만, 소수의 누군가에게 건강은 ‘생존’이기도 합니다. 이 아이들의 삶은 병원에서 시작합니다. 수많은 의료 기반의 처치(치료)와 함께 생의 처음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죠. 아이와 가족은 필사적으로 살아내려 애쓰고, 결국 조금씩 성장하여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긴 기간 병원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시점부터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요?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이러한 가정에게는 지역사회 기반의 성장과 돌봄 체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병원에서 이어지던 필요한 도움이 지역사회에서도 연결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다면 집으로 돌아오기 전부터 전달체계를 통해 준비해야 합니다. 보호자에게 필요한 것은 병원만큼의 전문적인 서비스도 있지만, 앞으로 맞이하게 될 막막하고 두려운 상황을 안심시켜 주는 이런 말일 수 있습니다.

“언제든 집으로 오시면 저희를 만나실 수 있어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의 초기 영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 전달과 보호자를 안심시켜 줄 수 있는 전문인력의 지지입니다. 흔히 말하는 일부 국가의 조기개입 서비스는 만 3세 이하의 영아와 가족을 대상으로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가 한 팀을 이루어 방문하는 형태로 운영되기도 합니다. 다학제 조기개입팀은 아동의 발달에서 가족 역량의 성장이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며, 발달의 첫 여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전환의 충격을 완화해 연착륙(soft-landing)할 수 있도록 ‘발달 코디네이팅’이 가능한 조기개입 서비스가 지역 기반으로 준비될 필요가 있습니다.

지자체 모델(발달136센터)

도봉구의 발달136센터는 다학제 전문가가 한 팀을 이루어 방문하는 긍정발달지원(PDS) 서비스를 통해 지역에서의 첫 삶을 지원합니다. 지역의 다양한 기관과의 연계·협력을 통해 영유아와 가정을 만나며, 가능한 한 빠르게 서비스가 시작될 수 있도록 접수–연계–서비스 시작의 흐름을 단절 없이 운영합니다. ‘발달1’은 생애 초기의 만 1세 전후 아이들의 고유한 특성을 상징하는 맞춤형 서비스입니다. 사진의 아이처럼 병원 기반의 삶에서 지역사회로 전환된 아이, 특별한 이벤트 없이 태어났지만 발달에 어려움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아이 모두를 포함합니다. 발달 여정의 첫 출발에서 방향을 잡아나갈 수 있도록 돕는 지원 서비스이자 지지 체계입니다.


두 번째 생애주기(발달3)

지역의 사례 2

“내 아이가 이상하다.”를 다양한 경로로 확인한 보호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확한 진단’입니다. 내 아이에게 정말로 문제가 있는지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진단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충격, 불신, 부정, 혼란, 불확실성, 상실, 죄책감, 자기비난, 낙인, 안도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감정 경험을 겪게 되지요. 이 과정을 ‘진단 오디세이’라고 부르기도 할 만큼 어려운 과정입니다(Hanley et al., 2021). 우리나라에서도 이 과정이 혼란스럽고 길게 느껴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여러 자료와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진단을 위해 기다리는 기간이 수개월 이상 길어지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더 오래 걸리기도 합니다.

이 혼란의 과정에서 보호자들은 공적인 시스템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먼저 발을 떼기도 합니다. 좋다는 치료, 식품, 약 등에서부터 심지어는 미신적 방법까지, 좋다고 이야기를 듣는 모든 것을 하게 됩니다. 내 아이를 ‘정상’ 범주로 끌어올리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셈이죠. 정확한 발달 수준과 정보, 그리고 근거에 기반한 개입이 부족한 상황에서 마치 고장 난 나침반을 바라보며 전력질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발달이 느리다는 요소 중에는 잘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 아이만이 가진 고유함과 다양함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고쳐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과정에서 보호자는 “내 아이는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도와주어야 건강하게 성장하고 발달할 수 있는가?”, “우리 가족의 일상과 삶은 얼마나 소중하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와 같은 일상과 삶 기반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조금 다르거나 발달의 느림이 일정 부분 확인되는 아이와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를 ‘정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함으로써 가족 전체의 삶이 더 나아지는 방향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이 시기에는 아이의 다름을 이해하고, 좋아지게 만들어야 하는 부분과 다름으로 인정해야 하는 부분을 구분하며 받아들여가는 과정을 돕는 일이 중요합니다. 아이가 살아가는 환경 안에서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지역 기반의 지원체계가 필요하고, 아이와 가정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묻고 찾아가는 사람(가족) 중심 서비스가 필요합니다.

지자체 모델

발달136센터는 가족 역량이 강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원합니다. 긍정발달지원(PDS)의 코칭과 컨설팅 지원을 기반으로 정보 전달, 방문 재활, 디지털 코칭 및 서비스 등 아동의 발달 특성에 맞는 맞춤형 방문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기능적으로 좋아지게 만드는 것과 고유함으로 품어야 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또한 발달이 느린 아이들 중 장애 등록이 되지 않아 이용할 수 없었던 ‘가족돌봄’ 서비스도 지원합니다. 아동과 가족에게 맞춘 가족중심 서비스를 지역 기반으로 풀어냅니다. ‘발달3’은 발달의 느림을 인지한 만 3~5세 시기에 필요한 맞춤형 서비스를 상징합니다. 이 시기의 가족 역량은 아동의 성장과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장애, 장애 고위험군, 경계선지능(느린학습자), 전형발달 등 아동의 특성과 상황에 맞게 발달을 이끌어가야 하는 주체인 ‘가족 역량’에 대한 지원이 핵심입니다.


세 번째 생애주기(발달6)

지역의 사례 3

『시후엄마, 김혜민 경찰입니다』(김혜민, 2025)의 김혜민님은 장애인등록증이 든 서류봉투를 한참 동안 뜯지 않고 가슴에 묻어둡니다. 내 아이가 ‘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제도적으로 확인받는 이 과정은 대체로 학교 입학 1~2년 전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아이와 가정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보호자들은 이 시기쯤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좋든 싫든, 혹은 장애를 마음 깊이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제도적으로 ‘장애인’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학교를 가야 하고 아직 부족하기만 한 아이가 학교에 가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1년 유예 후 학교에 들어가는 선택을 하는 가정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전력질주와는 조금 다른 삶을 준비해 나가는 시기입니다.

여전히 많은 치료와 서비스 기반으로 일상이 구성되지만, 많은 보호자들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기도 합니다. 장애를 일부로 인정하고, 그것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하도록 돕는 과정으로 방향이 바뀌어 갑니다. 상대적으로 냉정한 학교생활에 필요한 활동들을 습득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되면서 고민은 한층 더 깊어지게 되죠. 단순해 보이는 ‘놀이’에서 학습과 집단생활이라는 과제가 눈앞에 펼쳐지게 됩니다.

보호자들의 생각보다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마주하게 되기도 합니다. 생애 첫 캠프에 도전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보기도 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부쩍 늘어나기도 합니다. 아이만의 고유한 모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좋은 지원’에 대한 바람이 커지게 되는 것이죠.

“우리 아이가 잘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것들만 도와준다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희망으로 초등 입학을 하게 됩니다. 어떤 아이들은 좋은 지원과 상황을 만나 잘 적응하고, 또 다른 어떤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죠. 학교생활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알아가는 첫 시작입니다.

이 시기의 아이와 가족에게는 학교로 대표되는 전이 지원이 매우 중요합니다. 학교 입학부터 그 이후의 학교생활을 예측해 보고, 아이의 기능 수준을 점검하면서 필요한 기능과 기술을 습득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아이의 고유함을 함께 알 수 있도록 정리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중 흔히 말하는 ‘도전적 행동’이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원인이 되어 나타나는지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죠. 무엇보다 앞으로의 12년간 초·중·고등학교 생활을 그려 보면서 장기적 관점으로 나아갈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살아갈 지역에는 아이를 조금 더 잘 알고, 친절하게 포용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발달136센터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한 준비를 지원합니다. 긍정발달지원(PDS), 맞춤형 방문 서비스(방문 재활, 디지털 코칭 및 서비스, 가족 돌봄 등), 교육, 자조모임, 지역사회 참여와 의제화 등 지역사회생활을 준비해나가는 과정입니다. 특히 아동의 전이를 준비하며 아동에 대해 잘 설명할 수 있는 자료(PCD)를 보호자와 함께 만들고 학교에 전달합니다. 아이의 좋은 지원을 위한 준비인 셈입니다. ‘발달6’은 장애와 함께 살아가게 되는 아이와 가족이 장애와 함께여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디딤돌의 역할을 합니다.


‘2025 삶퍼런스’(장애·발달지연 자녀를 키우는 보호자들의 이야기)에서 한 보호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아이는 장애인이다. 이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지? 미래가 두렵다. 슬프고 불행하다’라는 거였어요. 겉으로는 밝았어도 부정적인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들어서 마음이 불행해지는 느낌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어느 날은 치료 후에 지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백미러로 아이를 쳐다보다가 ‘나 이대로 그냥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런 종류의 생각이 자주 들었으니 제 멘탈이 많이 무너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느린 연습, 함께 걷는 길』, 이인아)

 

남들과 조금 다르면서 도움이 필요한 자녀와 함께 살아내는 가정의 삶은 정말 녹록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보호자들 각각의 책임으로 여기며 치열하게 살아 왔습니다. 이제 오랫동안 미뤄졌던 지역장애아동지원센터 설치를 통해 국가와 사회가 책임 주체로서 첫 발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지역사회는 장애와 함께 시작하는 발달이 ‘과제’만으로 남지 않도록, 고유함과 다름으로 존재하며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발달을 돕는 지역사회’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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