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가장 중요한 곳에, 가장 우선적으로 존재하는 장애
미국에 머무른지 한달 가까이 지나고 있다.
이곳에 온지 이틀째 되던 날, 시차 적응도 되지 않은 상태로 디즈니크루즈를 탔다.
꿈과 환상이 이루어지는 곳.
실제로 크루즈에서의 시간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다채로웠고, 화려했다.
마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모두 다 넣어놓은 듯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한복판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그 수많은 것 중 나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첫번째는 선상에서 물놀이를 하며 만났던 꽤 많은 중증 장애아동들이다.
이 아이들도 물놀이를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던 크루즈의 구조와 그것이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가장 처음 만난 신기함이었다.
두번째는 매일 저녁 펼쳐진 대극장에서의 화려한 뮤지컬에서 겪은 상황이다.
뒷줄 어딘가에 자폐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었고, 뮤지컬 내내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는 상황이었다.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된 상황에서 단 한순간도 누군가가 불평하지 않았고, 그 사람은 공연장에 머무르며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세번째는 통째로 빌린 한 섬에서 본 모래사장 전용 휠체어다.
고운 모래에서는 바퀴가 빠지기 쉬운 일반적인 휠체어 대신 준비된 전용 휠체어를 섬의 초입, 가장 눈에 띄는 장소에 위치하여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고, 크루즈에서 본 많은 이동약자들이 해변을 즐기고 있었다.
디즈니는 일관적이었다. 정당한 비용을 지불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최선의 준비와 최고의 서비스를 하겠다는 의지를 일정 내내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가능했을까? 첫번째의 아동과 가족은 크루즈를 타고 싶어도 알아보다가 휠체어 접근성이 안되서 예약조차 못했을 가능성이 크고, 탑승했더라도 물놀이는 대소변을 가려야 할 수 있다는 황당한 기준에 가로막혀 즐기지 못한 반쪽짜리 여행이었을 것이다. 두번째는 십중팔구 '거 좀 조용히 좀 합시다!'라는 불평이 터져나왔을 것 같고, 두어번 그런 말을 들은 당사자들이 황급히 관람장을 빠져나오는 그림이 그려진다.
꿈과 환상은 누구에게나 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가는 곳은 마트이다.
같은 것 같지만 다른 미국의 마트들은 넓은 땅덩어리만큼 물건도 다양하고, 특성도 다르다.
과일은 여기, 고기는 저기, 뭐는 거기인 탓에 하루에 한번 이상씩은 마트 나들이를 한다.
마트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내 눈에 띈 것은 이동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위한 카트였다.
전동, 수동을 가리지 않고 휠체어 앞에 카트가 장착되어 있었고, 마트 내부에 들어서니 그 이용률이 상당히 높았다.
장을 보는 활동에 있어 보행기능의 손상이라는 기능적 어려움이 장애의 요소로 작용하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도 자연스러웠고, 그들의 장보기를 위한 티나지 않는 배려가 존재했다.
두번째 눈에 띈 것은 마트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계산을 하는 직원이었다.
신체의 반에 마비가 있는 사람, 한쪽 팔이 평균보다 반에 못미치게 자란 사람, 의족을 착용한 사람, 등이 매우 굽어 팔 기능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생각해보면 움직임의 어려움이 있어도 손님을 환대하는 건 어렵지 않은 게 당연하다는 사실,
팔 기능이 어려운 사람이 지원자가 있다면 바코드를 찍고 계산을 해주는 게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머리론 알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의 개인적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건을 사고 파는 것 역시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관광지에서는 어떨까?
애틀란타로 짧은 여행을 떠났을 때를 떠올려본다.
세계에서 가장 큰 수족관이라고 하는 조지아아쿠아리움에 방문했다.
굉장한 규모 답게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다양한 수중생물이 있었고, 아들은 매우 즐거워하며 관찰했다.
고래들이 있는 장소에 갔을 때, 키가 굉장히 큰 한 청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영어가 짧은 나로선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대충 짐작해보건데 고래에 대해 설명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괜찮다고 말하자 곧바로 옆에 있는 다른 일행으로 갔고, 그 일행의 동의에 열정적으로 고래를 설명해준다.
그 청년은 수족관의 직원이었고, (단언할 수 없지만) 자폐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고래에 대해 잘 알고,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 일을 하고 있었다.
수족관의 로비에서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청년을 만났다.
매우 친화적인 표정과 말투로 다가와 기분이 어떤지,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다.
없다고 하니, 밝은 미소로 수족관을 즐기라고 대답해주었다.
그 청년 역시 수족관의 직원이었다. 로비를 돌아다니며 관람객들에게 환대의 기운을 퍼트리고 있었다.
그는 매우 즐거워보였고, 그 환대의 기운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것을 보면 그보다 적임자는 없을 것 같았다.
거의 모든 장소에 휠체어석을 위한 자리가 가장 관찰을 잘 할 수 있는 장소에 마련되어 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 너무 당연하게 가서 관찰을 하고,
사람들은 그 자리에 굳이 가지 않거나, 휠체어를 발견하면 자리를 비켜준다.
신체적 어려움과 휠체어라는 요소를 고려하여 가장 적합한 자리로 구성한다.
기념품샾 입구에서 본 마네킹은 4시간 동안 이어진 충격의 끝이었다.
백인, 흑인, 황인을 대표하는 마네킹과 함께 휠체어를 탄 마네킹이 있다.
장애라는 다양성을 전면에 배치하면서 그곳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던지는 것 같았다.
'가장 중요한 건, 수족관을 잘 즐기는 것이에요!'
장애는 가장 중요한 곳에 가장 잘 보이는 모습으로 존재했다.



스톤마운틴과 마틴루터킹 역사박물관을 함께 생각해본다.
스톤마운틴에서의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역사와 마틴루터킹의 흑인인권운동을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거대한 돌산을 걸어 오르고, 그 위에서 끝없이 펼쳐진 대자연을 바라보며 감동에 젖어들었다.
마틴루터킹 주니어의 치열했던 삶을 알아보며 숭고한 경외감을 가질 수 있었다.
어찌보면 정반대의 역사적 의미를 지닌 이 두곳에서도 나의 충격은 이어진다.
스톤마운틴 정상에서 본 경사로는 실용적이었다. 돌산 정상의 스카이라이드와 연결된 건물과 이어진 경사로는 넓이와 길이가 충분해 보였다. 유모차 두대가 동시에 이동해도 충분한 넓이와 한손으로 밀더라도 어렵지 않은 길이로 만들어진 각도였다. 휠체어 뿐 아니라 아주 어린 아이들을 스톤마운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마틴루터킹 역사박물관에서는 입구에서부터 놀라웠다.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 우리를 맞이한 사람이 (전맹처럼 보이는) 시각장애이인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들어서자 매우 환대의 태도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 백발의 노인이었고, 솔직히 처음의 인상은 환대 외에 제대로 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지나치면서 본 그의 모습은 능숙하게 사람들을 프로그램에 안내하고, 환대하는 능숙한 직원이었다.
박물관 안에서는 청각장애인 한사람을 위한 수어통역사를 만났다. 박물관에 고용되어 상주하고 있는 사람일까? 아니면 직원 중 수어가 가능한 사람이 있는 것일까? 몇 개의 질문을 품고 둘러본 시간이었다.




미국에서의 짧은 내 경험 안에서 바라보면
미국이란 나라에서의 장애는 가장 중요한 곳에, 가장 우선적으로 존재했다.
ICF에서는 장애와 함께 하는 사람의 모습을 종합적으로 바라본다. 신체기능과 구조, 활동과 참여 영역에서 기능과 장애로 구분하여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탐구한다. 또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개인적(내적 요소)/환경적(외적 요소)인 요인을 구분한다. 그 중 환경적 요인은 그것이 있고, 없음으로써 사람에게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안경(환경적 요인)이 있음으로써 시력(신체기능과 구조)이 나쁜 사람이 보기(활동과 참여)에 어려움이 없는 것, 경사로(환경적 요인)이 없음으로써 하지마비(신체기능과 구조)가 있어 보행(활동과 참여)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 노동(활동과 참여)을 할 수 없는 것 등을 이야기할 수 있다.
미국은 환경적 요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사회적 인식과 태도, 공공건물의 시설, 제도와 정책, 보조도구, 구성원들의 지원 등 환경적 요인을 구성하고 있는 분류에 대해 실제로 보고 느껴보니 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장애가 있음에도 일상을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지향에 필요한 사회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영향을 말이다. 장애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 사회에도 여전히 혐오와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이유에는 장애를 가장 중요하게, 우선적으로 존재하게 하는 사회와 사람들의 의도된 노력에 있다.
더 중요하게, 더 전면에, 더 가능하게 포용하려는 노력.
장애가 언제나 가장 마지막인 우리 사회에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